제3자를 통한 간접적인 방법에 의한 거래나 다단계 거래에 관한 실질과세원칙 적용 여부의 판단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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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사안의 개요
1. 대상판결의 사실관계
원고는 부동산 매매업, 부동산 임대업, 부동산 분양대행업 등을 목적사업으로 설립된 법인이고, A는 甲, B는 乙, C는 丙, D는 丁이라는 상호로 각 부동산업을 영위하는 개인사업자들(이하 A, B, C, D를 통칭하여 “A 등”)이다. A 등이 매입한 고양시 일산서구 ○○동 및 □□동 일대의 농지 10필지(이하 “이 사건 토지”)에 관하여 원고는 2017.12.5.부터 2018.6.25.까지 A 등과 각 분양대행계약을 체결한 후 A 등에게 2018년 제2기 기간에 총 공급가액 5,253,054,412원의 세금계산서(이하 “이 사건 각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2018년 제2기 부가가치세 매출세액으로 525,305,440원, 매입세액으로 36,556,118원, 세금계산서 지연발급ㆍ지연수취 가산세로 5,245,687원을 신고(이하 “당초 신고”)하였으며, 그에 따라 부가가치세 488,749,322원(= 매출세액 525,305,440원 – 매입세액 36,556,118원) 및 가산세 5,245,687원 합계 493,995,009원을 납부하였다. 피고는 2019.1.28.부터 2019.6.10.까지 원고에 대하여 거래질서관련 조사를 진행하였고, 위 조사결과 ‘원고가 A 등에게 분양대행용역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A 등 명의로 이 사건 토지를 우회 취득한 후 분할매각하여 토지매매업을 영위한 것’이라고 보아, 원고가 A 등에게 발급한 이 사건 각 세금계산서를 가공세금계산서로 확정한 뒤 당초 신고의 2018년 제2기 부가가치세 매출세액 525,305,440원을 모두 부인하고, 원고가 신고한 매입세액 36,556,118원을 모두 불공제하였으며, 구 부가가치세법(2019.12.31. 법률 제1684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60조 제3항 제1호에 따라 가공세금계산서 발행에 따른 가산세(이하 “세금계산서 불성실가산세”) 157,591,632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피고는 위와 같은 매출ㆍ매입세액 부인에 따라 발생한 원고에 대한 2018년 제2기분 부가가치세 환급세액 493,995,009원에서 세금계산서 불성실가산세 157,591,632원을 차감한 나머지 336,403,377원을 원고에게 환급하는 내용의 부가가치세 경정결의(이하 “부가가치세 경정결의”)를 하였다. 원고는 2019.4.1. 이 사건 토지의 양도차익이 원고에게 귀속되었음을 전제로 2018 사업연도 법인세 1,224,256,802원을 신고하였고(그중 토지등 양도소득에 대한 법인세액으로 신고한 금액은 677,068,793원), 2019.4.8. 법인세 가산세(지급명세서 미제출 가산세) 2,293,300원을 수정신고하였다. 피고는 “구 법인세법(2020.8.18. 법률 제1749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55조의 2 제6항에 따르면 토지등 양도소득은 양도금액에서 장부가액만 차감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판매수수료 등 부대비용을 공제할 수 없음에도 토지매매업을 영위한 원고가 법인세를 신고하면서 토지등 양도소득에서 판매사원들에게 지급한 사업경비 등을 공제하여 토지등 양도소득을 과소신고하였다”고 보아 2019.11.1. 원고에 대하여 과소신고분에 관한 2018 사업연도 법인세 549,261,260원(가산세 포함)을 증액경정ㆍ고지하였다. 피고는 부가가치세 경정결의에 따라 원고에게 환급하여야 할 2018년 제2기분 부가가치세 환급세액 336,403,370원을 원고의 2018 사업연도 법인세에 충당한 뒤 2019.11.15. 원고에게 충당사실을 통지하였고, 별도로 부가가치세 경정을 고지하지는 않았다. 원고는 ① 2019.11.15. 국세환급금 충당 통지서로 고지된 2018년 제2기 세금계산서 불성실가산세 157,591,632원의 부과처분(이하 “이 사건 부가가치세 부과처분”) 및 ② 2019.11.1.자 2018 사업연도 법인세 1,896,727,553원(가산세 포함)의 부과처분 중 토지등 양도소득에 대한 법인세 부분(이하 “이 사건 법인세 부과처분”, 이 사건 부가가치세 부과처분과 통칭하여 “이 사건 각 처분”)에 불복하였다.
2. 대상판결의 요지
(1) 원심판결(서울고법 2022누47942, 2023.2.14., 판결)
원심판결은 A 등이 원고와 체결한 분양대행약정(이하 “이 사건 분양대행약정”)이 진실한 것인지 의심이 들게 하는 사정이 있으나, 피고가 제출한 증거들 및 그 주장 사유만으로는 이 사건 분양대행약정이 법률행위로서 효력이 전혀 없는 가장행위에 해당한다거나 이 사건 각 세금계산서가 허위로 작성되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였는데, 그 판단 근거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① A 등은 이 사건 토지를 매수할 당시 직접 매매계약을 체결하였고, 직접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았으며, 이 사건 토지에 관한 종합부동산세도 납부한 것으로 보인다. A 등이 대출에 따른 권리ㆍ의무를 실제 부담하였고 이 사건 토지 및 양도에 따른 세금도 모두 납부한 이상, 이 사건 토지 취득으로 인한 법률적ㆍ경제적 위험을 직접 부담한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고, 이 사건 토지를 매수하면서 보유하던 자금이 아니라 차용하거나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받은 금원만을 투입하였던 사정, 이를 이후 이 사건 토지의 분양대금으로 상환하였다는 사정만으로 A 등이 이 사건 토지를 매수하면서 실제 매수자로서의 위험을 부담하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없다. ② 이 사건 분양대행약정에는 원고가 제공한 용역의 내용, 이 사건 토지의 분양가액, 용역의 대가인 분양대행수수료 등이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와 같은 약정에 따라 이 사건 토지의 매도대금 중 분양대행수수료를 제외한 금원이 A 등에게 지급되었는바, 이 사건 분양대행약정에 따른 자금흐름이 이에 부합하고, 원고는 그 거래 과정에서 발생한 부가가치세를 전부 신고하였다. ③ 부가가치세 조사종결보고서의 내용에 의하더라도, 이 사건 토지의 분양으로 A는 6,400만원, B는 1억 5,900만원, C는 8,300만원의 순이익을 얻었다. 위와 같은 A 등의 순이익에서 A 등이 이 사건 토지에 관하여 부담한 세액을 공제하면 그 이익이 더 줄어들기는 하고, 원고의 분양대행수수료가 그보다 훨씬 크다는 사정 등이 인정되기는 하나, 원고가 A 등에게 이 사건 토지를 매수할 수 있도록 각종 정보와 편의를 제공하였고, 분양대행을 통하여 성공적으로 이를 매도하여 A 등이 매도차익을 얻을 수 있게 한 점, 사적자치의 원칙에 따라 분양대행계약의 내용은 당사자들 사이에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가 얻은 이익이 A 등이 얻은 이익보다 훨씬 많다는 사정만으로는 이 사건 각 세금계산서가 가공거래에 의한 허위의 세금계산서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④ 피고가 허위세금계산서 발행을 이유로 원고를 고발하였는데 사법경찰관은 “원고의 각 범죄협의 인정키 어려워 모두 불기소(혐의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였고,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혐의없음의 결정을 하였으며, 서울고등법원은 “피고가 제출한 자료 및 수사기록만으로는 원고에게 해당 범죄가 성립한다거나 검사의 불기소처분이 부당하다고 인정하기에도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피고의 재정신청을 기각하였다. 위 재정신청 기각 이후로 추가로 밝혀진 사정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원심판결은 위 판단을 근거로 원고가 토지분양대행업이 아닌 토지매매업을 하였을 전제로 세금계산서 불성실가산세를 부과한 이 사건 부가가치세 부과처분은 위법하고, 원고는 토지분양대행업을 한 것이고 원고가 토지등 양도소득을 직접 취득한 것이라고 볼 수도 없으므로, 이 사건 법인세 부과처분도 위법하다고 판단하였다.
(2) 대상판결
대상판결은 원심판결과 달리 이 사건 각 처분이 적법하다는 취지로 원심으로서는 이 사건 분양대행약정 등이 가장행위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실질과세원칙을 적용하여 거래를 재구성할 수 있는 여부에 대하여 더 나아가 심리ㆍ판단하였어야 하였다고 판단하였는데, 그 판단 근거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① 부동산 매매업, 분양대행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인 원고는 소외인 등 개인들이 원고 등의 자금 부담으로 매수한 고양시 소재 농지들인 이 사건 토지에 관하여 이 사건 분양대행약정을 체결한 후 불특정 다수인에게 이를 지분별로 분할매각한 다음, 그 양도차익의 대부분을 분양대행수수료 명목으로 취득하였다. ② 이와 같은 이 사건 토지의 매수자금 조달 경위 및 매도 등 거래의 전 과정, 이 사건 분양대행약정의 체결 경위와 목적 및 내용, 원고가 수행한 사업의 구체적 내용과 방식, 원고가 취한 분양대행수수료의 규모, 소외인 등이 취한 경제적 이익의 정도 등에 비추어, 원고가 얻은 분양대행수수료의 실질은 사실상 토지매매업을 영위하면서 얻은 이 사건 토지의 양도차익으로서 원고가 그 실질적 귀속주체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③ 원고가 농지인 이 사건 토지의 소유권을 취득하여 매도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는데도, 원고는 소외인 등과 이 사건 분양대행약정을 체결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외인 등과 수분양자 사이의 분양계약체결을 주도하는 등의 비합리적인 우회거래를 통하여 법인세법 제55조의 2에 따른 비사업용 토지의 양도소득에 관한 법인세 등을 회피하였다. 비록 원고가 위와 같은 우회거래 방식을 취한 데에 사업상의 필요 등 다른 이유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농지법 위반의 불법적인 사업목적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여지가 있는 이상, 곧바로 조세회피목적이 없었다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 ④ 사정이 위와 같다면, 이 사건 분양대행약정, 이 사건 토지 매매 등 일련의 행위 또는 거래의 형식이나 과정은 처음부터 원고의 조세회피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여 그 경제적 실질이 원고가 직접 이 사건 토지를 취득하여 양도한 것과 동일하다고 평가할 수 있어 국세기본법 제14조 제3항의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고 볼 여지가 크다.
Ⅱ. 쟁점의 정리 및 관련 법령
1. 쟁점의 정리
국세기본법 제14조 제3항은 “제3자를 통한 간접적인 방법이나 둘 이상의 행위 또는 거래를 거치는 방법으로 이 법 또는 세법의 혜택을 부당하게 받기 위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경제적 실질 내용에 따라 당사자가 직접 거래를 한 것으로 보거나 연속된 하나의 행위 또는 거래를 한 것으로 보아 이 법 또는 세법을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는 원고가 이 사건 분양대행약정에 따라 A 등이 이 사건 토지를 취득한 후 원고가 분양대행을 하여 이 사건 토지를 분양하고 A 등으로부터 분양대행수수료를 지급받은 것이 국세기본법 제14조 제3항을 적용하여 원고가 직접 이 사건 토지를 취득하여 양도한 것과 동일하게 평가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2. 관련 법령
Ⅲ. 대상판결에 대한 평석
1. 실질과세원칙의 개념
실질과세원칙은 조세 부담의 공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실질에 따라 세법을 해석하고 과세요건사실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원칙으로서 조세평등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원칙이다.1) 그리고 대법원은 실질과세원칙이 헌법상의 기본이념인 평등의 원칙을 조세법률관계에 구현하기 위한 실천적 원리로서, 조세의 부담을 회피할 목적으로 과세요건사실에 관하여 실질과 괴리되는 비합리적인 형식이나 외관을 취하는 경우에 그 형식이나 외관에 불구하고 실질에 따라 담세력이 있는 곳에 과세함으로써 부당한 조세회피행위를 규제하고 과세의 형평을 제고하여 조세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08두8499, 2012.1.19., 전원합의체 판결, 이하 “전원합의체 판결”). 국세기본법상 실질과세원칙 조항은 1974.12.21. 국세기본법 제정 시부터 국세기본법 제14조에 규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국세기본법 제14조 제1항은 납세의무의 귀속을 정할 때 실질적 귀속을 기준으로 한다는 내용인데, 이를 소위 ‘실질소득자과세의 원칙’이라고 하고, 국세기본법 제14조 제2항은 과세표준을 계산할 때 실질을 기준으로 한다는 내용인데, 이를 소위 ‘실질소득과세의 원칙’이라고 한다.2) 국세기본법 제14조 제3항은 2007.12.31. 법률 제8830호로 개정 시 신설되었는데, 납세자가 제3자를 통한 간접적인 방법에 의한 거래나 다단계 거래를 통하여 세법의 혜택을 부당하게 받는 경우 경제적 실질에 따라 당사자가 직접 거래를 한 것으로 보거나 연속된 하나의 행위 또는 거래를 한 것으로 본다는 취지를 규정한 것으로 ‘우회거래 또는 단계거래 부인의 원칙’이라고 한다.3) 구체적으로 당사자가 의도하는 경제적 효과와 어떤 거래나 행위의 법률적 효과가 다른 경우,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부인규정 없이 국세기본법상 실질과세원칙 조항만으로 실질에 따라 과세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되는데, 대법원 판례 중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부인 규정이 필요하다는 판례가 다수 있다(대법원 2011.5.13. 선고 2010두5004 판결, 대법원 2011.4.28. 선고 2010두3961 판결, 대법원 2009.4.9. 선고 2007두26629 판결 등). 다만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에는 국세기본법상 실질과세원칙 조항만으로 실질에 따라 과세할 수 있다고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1) 김완석, “거래내용에 관한 실질과세의 원칙의 적용 범위 - 판례의 동향을 중심으로 -”, 『조세논총』 제1권 제1호, 한국조세법학회, 2016., 38면. 2) 황남석, “실질과세원칙의 적용과 관련된 최근 판례의 동향 및 쟁점”, 『조세법연구』 제23집 제1호, 한국세법학회, 2017., 62면. 3) 황남석, 위의 논문, 62면.
2. 실질과세원칙상 ‘실질’의 의미에 관한 견해의 대립
학계에서는 실질과세원칙상 ‘실질’의 의미에 관하여 ‘법적 실질설’과 ‘경제적 실질설’의 견해의 대립이 있다. 법적 실질설이란 과세대상의 법적인 형식ㆍ외관과 법적 실질이 괴리가 있을 때 법적 실질에 따라 세법을 해석ㆍ적용하여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입장이다.4) 즉, 형식ㆍ명의ㆍ외관에 구애받지 않고 당사자 및 거래의 내용을 사법 질서에 따라 확정한 뒤 세법을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법적 실질설의 입장에서는 국세기본법 제14조가 실질과세원칙을 적용하기 위한 독자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한편, 경제적 실질설이란 경제적 거래 내용 및 귀속이 법적인 거래 내용 및 귀속과 차이가 있는 경우 전자의 관점에서 세법을 해석ㆍ적용하여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입장이다.5) 즉, 세법은 사법에 입각한 거래의 내용 및 귀속에 구애되지 않고, 경제적 관점에서 거래의 내용 및 귀속을 재구성하여 세법을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경제적 실질설은 언제든지 거래의 경제적 효과만을 기준으로 과세 효과를 파악하여야 한다는 ‘경제적 효과 기준설’과 법률적 효과에 따른 과세를 원칙으로 하되 사업상 목적이나 경제적 이유 없이 조세회피목적으로 취한 거래나 행위에 대해서만 그 형식을 부인하고 경제적 효과에 따라 과세하는 ‘절충설’로 나뉜다.6) 그리고 경제적 실질설은 법적 실질설과 달리 국세기본법 제14조가 실질과세원칙을 적용하기 위한 독자적인 근거가 될 수 있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4) 강석규, “간주취득세와 실질과세의 원칙(2012.1.19. 선고 2008두8499 전원합의체 판결: 공2012상, 359)”, 『대법원판례해설』 제92호, 법원도서관, 2012., 33면. 5) 강석규, 앞의 논문, 33면.; 『조세법 쟁론』 제8판, 삼일인포마인, 2024., 100면. 6) 한만수, 『조세법강의』 신정15판(2023년도판), 박영사, 2023., 37면.
3. 실질과세원칙에 관한 대법원의 태도
전원합의체 판결 이전에는 대법원은 대체로 “납세의무자가 경제활동을 함에 있어서는 동일한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서도 여러 가지의 법률관계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으므로 그것이 가장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과세관청으로서는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하여야 하고, 납세의무자의 거래행위를 그 형식에도 불구하고 조세회피행위라고 하여 그 효력을 부인할 수 있으려면 법률에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부인 규정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여 법적 실질설과 유사한 입장으로 이해되었다. 이에 반하여, 전원합의체 판결7)은 경제적 실질설 중 절충설을 취한 것으로 평가된다.8) 다만, 그렇다고 하여 법적 실질설과 유사한 대법원 판결들을 배척하여 폐기하는 형식을 취하지 않았고,9) 그 이후에도 종래 대법원 판결의 판시와 동일한 판시가 반복되고 있다. 한편, 전원합의체 판결은 “실질과세의 원칙은 조세법의 기본원리인 조세법률주의와 대립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세법규를 다양하게 변화하는 경제생활관계에 적용함에 있어 예측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합목적적이고 탄력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조세법률주의의 형해화를 막고 실효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조세법률주의와 상호보완적이고 불가분적인 관계에 있다고 할 것이다.”라고도 판시하였다. 이러한 판시는, 종전의 일부 판결에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부인규정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실질과세원칙을 이유로 납세자들이 선택한 거래 형식을 부인하게 되면 조세법률주의가 형해화(形骸化)될 수 있다는 판시와는 대비된다.10) 전원합의체 판결 후 나온 전환권에 의한 주식 저가인수와 관련된 (대법원 2015두3270, 2017.1.25.) 판결,11) 교차증여와 관련된 (대법원 2015두46963, 2017.2.15.) 판결,12) 출자금으로 채무를 변제한 것과 관련된 (대법원 2017두57516, 2017.12.22.) 판결,13) 분할 및 합병과 관련된 (대법원 2017두41313, 2022.8.25.) 판결,14) 우선주 감자대금과 관련된 (대법원 2020두37857, 2023.11.30.) 판결15) 등은 전원합의체 판결과 같이 경제적 실질설 중 절충설의 태도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7) ‘로담코 판결’이라고도 불리는 대법원 판결로서, 모회사 甲 외국법인이 100%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자회사들인 乙 외국법인과 丙 외국법인이 丁 내국법인의 지분 50%씩을 취득하고, 乙 회사가 75%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戊 내국법인의 나머지 지분 25%를 丙 회사가 취득하자, 관할 행정청이 甲 회사가 丁 및 戊 회사의 과점주주라고 보고 甲 회사에 대하여 구 지방세법(2005.12.31. 법률 제7843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105조 제6항에 따라 취득세 등 부과처분을 한 사안에서, 주식 등을 취득한 형식과 외관에만 치중하여 甲 회사에 취득세 납부의무가 없다고 단정한 원심판결에 실질과세원칙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한 사례이다. 8) 위 전원합의체 판결 이전에도 (대법원 2001두9394, 2003.6.13.) 판결, (대법원 95누15476, 1997.6.13.) 판결 등 경제적 실질설을 취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9) 강석규, 위의 책, 102면. 10) 강석규, 앞의 책, 103면. 11) 甲 주식회사의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인 乙이 甲 회사가 다른 회사에 발행한 전환사채를 약정에 따른 조기상환권을 행사하여 양수한 후 전환권을 행사하여 수령한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ㆍ취득하자, 과세관청이 乙이 보통주 중 乙의 소유주식비율을 초과하여 인수ㆍ취득한 부분에 대하여 당시 주가와 전환가액의 차액 상당을 증여받았다는 이유로 증여세 부과처분을 한 사안에서, 전환사채의 발행부터 乙의 조기상환권 및 전환권 행사에 따른 甲 회사 신주취득까지 시간적 간격이 있는 일련의 행위들이 별다른 사업상 목적이 없이 증여세를 부당하게 회피하거나 감소시키기 위하여 비정상적으로 이루어진 행위로서 실질이 乙에게 소유주식비율을 초과하여 신주를 저가로 인수하도록 하여 시가와 전환가액의 차액 상당을 증여한 것과 동일한 연속된 하나의 행위 또는 거래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우므로, 구 상속세 및 증여세법(2010.1.1. 법률 제991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4항을 적용하여 증여세를 과세할 수는 없는데도 이와 달리 본 원심판결에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이다.참고로, 구 상속세 및 증여세법(2010.1.1. 법률 제991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4항은 국세기본법 제14조 제3항과 거의 동일한 내용의 규정이다. 12) 甲 주식회사의 주주들이며 남매 사이인 乙과 丙 및 丙의 배우자가 각자 소유 중인 甲 회사 주식을 乙은 丙 부부의 직계비속들에게 丙 부부는 乙의 직계비속들에게 교차증여하자 과세관청이 실질은 각자가 자신의 직계비속들에게 직접 증여한 것으로 보아 乙 및 丙 부부의 직계비속들에게 증여세 부과처분을 한 사안에서, 乙과 丙 부부는 각자의 직계비속들에게 甲 회사 주식을 증여하면서도 증여세 부담을 줄이려는 목적 아래 그 자체로는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교차증여를 의도적인 수단으로 이용한 점 등을 고려하여, 그러한 교차증여를 구 상속세 및 증여세법(2013.1.1. 법률 제1160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4항에 따라 실질에 맞게 재구성하여 乙과 丙 부부가 각자의 직계비속들에게 직접 추가로 증여한 것으로 보아 증여세를 과세할 수 있다고 한 사례이다. 13) 모회사가 자회사, 손자회사의 관계에서 자회사가 손자회사에 출자를 하고 그 손자회사가 출자금으로 다른 자회사의 채무를 상환한 사안에서, 자회사의 실체를 함부로 부인하여 모회사가 손자회사에 대하여 채권을 출자전환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사례이다. 14) 甲 주식회사가 부동산 양도로 받은 계약금과 중도금을 甲 회사의 일부를 인적분할 방식으로 설립한 회사에 이전하고 위 계약금과 중도금 관련 유동부채를 포함한 분할 전 甲 회사가 보유하던 부채 전부를 보유한 상태에서, 甲 회사의 주주들이 乙 주식회사 주식을 전부 인수한 후 甲 회사를 乙 회사에 흡수합병하였고, 乙 회사는 합병 당시 위 부동산을 시가로 평가하여 승계하고 위 부동산을 매수자에 이전하여 매매잔금을 받은 후 양도금액을 익금에 산입하고 합병 당시 시가로 평가된 양도 당시 장부가액을 손금에 산입하여 법인세를 신고ㆍ납부하자, 관할 세무서장이 甲 회사가 분할과 합병을 통해 손금에 산입할 위 부동산의 장부가액을 높이는 등의 방법으로 위 부동산의 양도에 따른 법인세를 부당하게 회피하였다고 보아 乙 회사에 법인세를 경정ㆍ고지한 사안에서, 이러한 분할과 합병은 조세회피행위에 해당하므로 乙 회사에 대하여 한 위 처분이 적법하다고 본 원심판단을 수긍한 사례이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구 국세기본법(2010.1.1. 법률 제991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14조 제3항을 적용하여 거래 등의 실질에 따라 과세하기 위해서는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행위 또는 거래의 형식이나 과정이 처음부터 조세회피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여 그 실질이 직접 거래를 하거나 연속된 하나의 행위 또는 거래를 한 것과 동일하게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당사자가 그와 같은 형식을 취한 목적, 제3자를 개입시키거나 단계별 과정을 거친 경위, 그와 같은 방식을 취한 데에 조세 부담의 경감 외에 사업상의 필요 등 다른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여부, 각각의 행위 또는 거래 사이의 시간적 간격 및 그와 같은 형식을 취한 데 따른 손실과 위험부담의 가능성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15) 甲 주식회사와 캐나다 소재 乙 법인이 합작투자계약 체결에 따라 내국법인인 丙 주식회사를 설립한 후, 출자양도계약에 따라 甲 회사가 네트워크 사업부문 전부를 丙 회사에 현물출자 방식으로 사업을 양도하여 대가로 丙 회사의 주식 등을 지급받았고, 또한 甲 회사와 乙 법인은 우선주약정을 체결하였는데, 이후 우선주약정에 따라 丙 회사가 지급한 우선주 감자대금을 甲 회사가 자본감소에 따른 의제배당액으로 보아, 법인세 신고 시 법인주주의 수입배당금 중 일정액을 익금불산입하도록 하는 구 법인세법(2010.1.1. 법률 제991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법인세법”) 제18조의 3 제1항을 적용하여 위 우선주 감자대금 중 일부를 익금불산입하자, 관할 세무서장이 위 우선주 감자대금의 실질은 네트워크 사업양도대금으로서 구 법인세법 제18조의 3 제1항을 적용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甲 회사에 법인세(가산세 포함)를 경정ㆍ고지한 사안에서, 위 우선주 감자대금은 수입배당금에 해당하므로 그 일부는 구 법인세법 제18조의 3 제1항에 따라 익금불산입의 대상이라고 한 사례이다.참고로, 대법원 공보연구관실에서는 위 대법원 판결이 납세자가 선택한 거래형식을 부인하여 과세할 수 있다는 개별 조항이 없는 경우에도 과세관청은 국세기본법 제14조 제2항에 따라 과세처분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거래의 전체 과정을 살펴볼 때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법률관계에 경제적 목적과 합리성이 인정되고, 과세관청이 주장하는 사정만으로 형식과는 다른 실질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실질과세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명시적으로 설시함으로써, 향후 과세관청의 과세실무와 하급심 판단의 기준을 제시하였다고 보도하였다.
4. 대상판결의 의의
원심은 납세자가 경제활동을 함에 있어서는 동일한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의 법률관계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으므로, 과세관청으로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사자들이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하여야 하고, 가장행위라거나 조세회피목적이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효하다고 보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의 법리를 전제로, 원고가 이 사건 분양대행약정에 따라 A 등이 이 사건 토지를 취득한 후 원고가 분양대행을 하여 이 사건 토지를 분양하고 A 등으로부터 분양대행수수료를 지급받은 것은 원고가 직접 이 사건 토지를 취득하여 양도한 것과 동일하게 평가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반면, 대상판결은 납세의무자가 행위 또는 거래의 형식을 취한 데에 사업상의 필요가 인정되더라도 그것이 강행법규나 사회질서에 반하는 불법적인 목적에서 비롯된 경우에 해당한다면, 이에 대하여 조세회피목적을 부인하는 것은 강행법규의 입법 취지, 과세형평 등에 비추어 현저히 불합리하므로, 그러한 사업상의 필요만으로는 조세 부담의 경감 외에 다른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보아 조세회피목적을 쉽사리 부인할 것은 아니라는 새로운 법리를 제시하면서, 이 사건 분양대행약정, 이 사건 토지 매매 등 일련의 행위 또는 거래의 형식이나 과정은 처음부터 원고의 조세회피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여 그 경제적 실질이 원고가 직접 이 사건 토지를 취득하여 양도한 것과 동일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대상판결은 국세기본법 제14조 제3항의 취지가 실질과세원칙의 적용 태양 중 하나를 규정하여 조세공평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고, 위 규정을 적용하기 위하여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행위 또는 거래의 형식이나 과정이 처음부터 조세회피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여 그 실질이 직접 거래를 하거나 연속된 하나의 행위 또는 거래를 한 것과 동일하게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는 등의 종래 대법원 판결의 법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새로운 법리를 제시하였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다만, 대상판결이 제시한 새로운 법리는 실질과세원칙 적용 대상의 범위를 넓혀 납세의무자의 예측가능성을 침해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으로 보이므로, 향후 과세관청의 과세실무 및 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을 지속적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